Hyunjoo Park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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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색의 향연                                

삶은 우리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범위를 언제나 벗어난다. 절대위기와 마주치게 되면, 우리는 불확실함과 혼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나는 “이 순간 여기에 있다 “ 라는 사실이다. 내가 그림의 바탕 작업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더욱 확실해 졌다. 오래 전 캔버스의 젯소(gesso) 작업을 직접 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작품 참고, 1997~1999년  “metamorphosis”, ”where are you from?’) 흔히 젯소지라고 부르는 바탕지는 물감을 흡수하는 정도에 따라 크게 수성지, 반수성지, 유성지로 나뉘게 되는데, 나는 이 중에서도 특히 수성지에 매료 되었다.  단어가 암시하듯 수성지는 물과 관련이 있다. 아교용액을 물에 중탕 시켜 바탕지를 만들기 때문에 기름 성분은 들어가지 않는다. 화지의 표면은 다공질로 이루어져 물감의 흡수력이 상당히 좋다. 주로 안료와 아교 용액, 그리고 건성유가 들어가는 미디움으로 작업을 한다. 물과 기름은 서로 상극이다. 그러나 신기하게 수성지는 기름을 잘 먹기도 한다. 서로 상극인 물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혼합되어 단단한 물질감을 화지(畵地) 위에 드러낸다. 작업의 과정은 마치 밭을 일구어 가는 농부의 일과 닮아 있다. 땅, 토양, 흙을 의미하는 “ground” 라는 단어는 회화 재료학상 용어로 그림의 바탕지를 의미 하기도 한다. 물과 양분, 그리고 햇빛을 흡수하여 생명체를 움트게 하는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이, 나는 백색 ground 위에 씨를 뿌리고, 가꾸면서, 열매가 맺히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러나, 이 때 섣부른 혹은 지나친 나의 욕망이 개입되면, 예민한 대지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만다. 화지 (畵地) 위로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쌓여가는 숨결과 흔적들을 지켜 보면서 오늘이라는 이 순간, 여기에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2020.5 작업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