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_ART Gwangju 2010

2010.9.1 - 2010.9.5

Information

Fair Hours

 9.1(wed) 5pm-8pm 
 9.2(thur)-9.3(fri) 11am-8pm 
 9.4(sat) 10am-8pm 
 9.5(sun) 10am-5pm 
  
Press / VIP Preview : 9.1(wed) 12pm-4pm  
  
Opening : 9.1(wed) 

Booth C-37 

Exhibiting Artist :

Koo, Seoung-youn
Park, Kwangsung
Yue, Kyung-sub
Zu, Doyang
Choi, Insun
Brian Alfred
Jean-michel Basquiat
Donald Judd

Art Gwangju 2010 [아트광주 2010]
2010.9.1 - 2010.9.5

 

 

시간 : 
 9.1(수) 5pm-8pm 
 9.2(목)-9.3(금) 11am-8pm 
 9.4(토) 10am-8pm 
 9.5(일) 10am-5pm 
  
Press / VIP Preview : 9.1(수) 12pm-4pm  
  
개막식 : 9.1(수) 
예화랑부스 C-37 

참여작가
구성연
박광성
여경섭
주도양
최인선
브라이언 알프레드
장-미쉘 바스키아
도날드 저드

Profile

구성연
구성연은 사탕을 소재로 아주 묘한 느낌의 ‘모란꽃’을 사진으로 재현한다. 우리민화의 ‘모란도’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번 작업은 형형색색의 달콤한 사탕이 그녀의 손작업을 거처 ‘상상세계의 모란꽃’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사진작업을 통해서 완성된 이미지는 민화의 모란도 병풍 한 폭으로 바뀐다. 미학자 강수미는 그녀의 사진 효과에 대해 “과잉된 ‘예술적 그 제스처’에 의해 전통의 상징적 기표를 차용 모방하여 자신이 표출하려는 다른 개념들을 표출시켜 낸다”고 평한다. 사탕과 꽃은 특유의 황홀함이 있다. 피어있는 동안은 눈부시고 아름답지만 이내 지고 나면 자취도 없다. 사탕 역시 달콤하지만 결국 혀끝에서 녹아 없어진다. 욕망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듯 황홀함과 달콤함은 현대인들의 욕망 표상이다. 화려함과 달콤함으로 유혹하는 ‘모란’과 ‘사탕’은 상호연상 작용을 일어켜, 시대 산물이며 일상적 사물인 사탕 꽃이 새로운 의미체계로 구성, 우리시대 욕망적 기호이미지로 재구성 되었다. 작가는 ‘사탕’의 본질변형과 ‘모란’의 전통적 상징성을 전복시켜 그만의 방식으로 소재와 주제성을 가지고 우리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 

박광성
박광성의 초상화들이 갖는 또 다른 고유한 특성은 미분화 상태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작가는 모델도 없고, 사진도 없으며 특정한 누군가를 표현하지 않는 자유로운 작업을 한다. 초상화들 이외에도 이와 같이 표현된 주제의 미분화는 박광성이 그린 여성 신체의 암시에서 만나게 되는데 젖가슴이나 엉덩이로 단순화 시킨 누드가 그것이다. 김애령은 박광성에 관한 논평에서 비디오아티스트 칼 하르트무트 레르(Karl Hartmut Lerch)가 80년대에 실행한 《 multiple 》, 그래서 보편적인 초상화를 매우 적절히 참조했는데 박광성이 그린 얼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 visage basique: 기본적 얼굴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남성과 여성의 얼굴, 연령과 각기 다른 혈통 등의 얼굴 수 십 개가 포개진 것이다. 미분화의 선택은 중립이 아니다. 어떤 공통적 정체성, 어떤 특정한 개인에 덜 의회하고, 실존의 최소와 최대를 동시에 표현하는 얼굴의 존재보다, 현대적 특성(개인의 병적 나르시즘의 표시) 에 덜 의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경섭
작가는  포항 출생 (1971년생)으로  베를린 국립종합예술대학교, 영상미술전공, 교수 디터 아펠트, Absolvent 졸업과 독일 국제 학술교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베를린 국립종합예술대학교에서  디지털 영상 미디어 전공한 바 있다. 2001년 부터 지금까지 독일을 오가며 작업을 왕성히 해 오고 있다. 빛을 이용한 사진, 조각 작업으로 
감각과 느낌을 체화시키는 교류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연친화적이고 명상적이며 사색적인 작업의 모티브들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데 손색이 없다.
한마디로 여경섭의 조형세계는 진실하다. 우리는 그래서 항상 그 세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여경섭은 그의 강열하고 민감한 감성이 결합된 미학이 있는 윤리적 시각만큼이나 작업에서 사진, 조각, 드로잉, 뉴미디어, 컬러리스트로서 멀티플한 작가적 특성을 보여준다. 윤리와 미학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라고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은 말 한 바 있듯이 그의 작업의 예술적 힘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상생이라는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윤리에서 발원한다. 그의 새로운 작품들은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는 본질적인 소멸성 속의 인간 'conditio humana'에 관한 인간의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을 지시한다. 인간은 우주의 한 부분인 흙에서 육화(肉化)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먼지니 먼지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 3장 19절) 여경섭은 그의 작품에서 개체의 삶 그리고 세상과 인류문화의 순간적일 수밖에 없는 취약성에 대해 말한다. 'memento mori' 무(無)는 여경섭에게 실존(實存)적 경험의 시작이 된다. “모든 것이 無로 돌아가고 無는 모든 것이 된다” : 먼지는 잘 안 보이는 것과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 일상의 순간에서 일어난 일, 한순간의 덧없음 그리고 생성과 소멸의 기록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고 뭉쳐서 어떤 형태를 이루고 다시 덧없이 허물어지는 먼지. 여경섭에게 우주의 모든 것은 해체와 전환의 과정인 것이다.

주도양
주도양의 작업들은 데이비드 호크니 방식의 사진설치나 모자이크처럼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축 한다는 점에서 이념적 공통성이 있지만 표현 방법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가 작품을 통해서 제시한 방법은 해체된 현실을 하나의 공간 속에서 다면 원근법을 이용하여 통일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실과 허구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허구 형식을 빌려 작가의 예술적 진술을 말하듯, 현실 세계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하나의 가상공간을 설정하고 그가 본 시각적 체험을 그 공간 속에서 집적하여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기는 수많은 겹눈으로 된 잠자리의 눈이요, 파리, 메뚜기의 눈이다.

최인선
최인선은 물질이 가지고 있는 자연성, 물질과 인간이 만나서 형성되어진 흔적 그리고 작가의도를 통해 존재론적 의미와 예술성의 접목을 보여주고자 한다. 최인선의 숙련된 솜씨는 필연을 만들어내며 생생한 날것의 오브제는 우연이라는 인과법칙을 만들어낸다. 그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물과 그림들은 회화의 공간 안에서, 화면을 뛰어넘어 공간조차도 운용하는 놀이를 기술한 것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질서에 속하는 영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과 물질성사이의 관계들을 화가의 눈으로 발견하고 그려내며 조합해 세계 존재의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 작가 최인선은 1964년 생으로홍익대 미대 회화과 및 同 대학원 수학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학교를 졸업 한 작가는 ’92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94년 국전 우수상, ’96년 한국일보 청년작가전 대상, 2002년 문화관광부 장관상, 2003년 하종현 미술상 등을 수상한 한국화단에서 실력있는 작가로 인정 받고있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로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 그의 작품세계는 진정 노력하고 반성하는 작가임이 틀림이 없다. 제1기(1989-1995):물성의 시대, 제2기(1996년-2002년):기호의 시대, 제3기는 현재 진행중인 이 작품들과 연장선에 있는 유화작업들이다. 이 작품은 활기에 가득찬 화면위로 개체의 성격에서 해방 또는 구성되고 자유롭게 조합되어진 붓의 질감들로 캔버스 화면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희망, 꿈을 표현한 것이며 무엇보다 세련된 색채의 향연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브라이언 알프레드
아운치와 메리분 갤러리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 브라이언 알프레드는 페인팅, 콜라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2D 작업, 에니메이션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풍경화를 그려온 그는 2007년 초상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주로 유명인들로써 예술가나 영화배우 또는 가수 등 연예인들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장-미쉘 바스키아
어머니의 손을 잡고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 정신을 잃은 듯 굳어 버린 한 소년이 있다. 그가 바로 장 미셀 바스키아. 불우한 성장기를 거친 바스키아는 길거리나 버려진 건물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그의 친구인 Al Diaz의 도움으로 낙서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길거리에 벽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어느날 우연히 마주치게 된 앤디 워홀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그의 그림 엽서를 파는 범상치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마약과 맞바꾼 그림 한 장. 이것이 한 미술평론가의 눈에 띄면서 그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낙서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고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1980년 타임 스퀘어의 낡은 창고에서 그의 첫 전시를 열게 되었다. 1981년 “P.S. 1 show” 에서 키스 하링, 앤디 워홀과 함께 전시회를 가졌고 이 전시를 통해서 뉴욕 미술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아트프라이스 닷컴에 따르면, 현대미술가 중에서 경매를 통한 거래 총액이 가장 높은 작가들 중 바스키아가 1위를 차지했고, 특히 올해 뉴욕 소더비에서 그의 작품, <무제, 1981>이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도날드 저드
저드는 1960년대 말부터 뉴욕 소호 코너에 위치한 자신의 빌딩을 작업실이자, 주거공간으로, 그리고 전시장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이 사용하게 될 가구들을 직접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1984년에는 본격적으로 가구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972년에 텍사스의 말파로 이사를 간 후부터 그는 주의의 건물과 건물의 디테일들을 직접 설계, 수리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20년대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들, 네델란드의 데 스틸 운동, 그리고 독일 바우하우스의 “종합예술(gesamte Kunstwerk)”의 개념을 자신이 소유한 지역과 건물들에 실현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