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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ᅳ문우식

2026.10.27. - 11.21.

『모더니스트 문우식』 (현암사) 출판 기념으로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중요시하는 1957년을 문우식의 작품으로 소환하는 전시로 69년 만에 선보이는 1957년 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전시작 〈비둘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포함해 1950년대와 60년대 추상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제1회 《현대미술가협회전》 
: U.S.I.S (美公報院), 1957. 5. 1-9日까지.
창립전 회원: 김영환, 김종휘, 김창열, 김청관, 문우식, 장성순, 이철, 하인두.
문우식은 협회 대표로 김창열과 선언문을 만들었고 10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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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화와 이에 따르는 회화 운동에 있어서 작화 정신의 과거와 변혁된 오늘의 조형이 어떻게 달라야 하느냐는 문제를 숙고함과 동시에 문화의 발전을 저지하는 뭇 봉건적 요소에 대한 ‘안티테-제’를 ‘모랄’로 삼음으로써 우리의 협회 기구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출발이 이 두 가지의 절박한 과제의 자각 밑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작품의 개개가 모두 이 이념을 구현하고 현대 조형을 지향하는 저 ‘하이부로-’의 제정신과의 교섭이 성립되었느냐에 대한 해명은 오로지 시간과 노력과 현실의 견실한 편달에 의거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갖는 공동의 출발선이 놓여 있음을 기꺼이 여기시는 선배 제현의 조언이 있다면 언제라도 알아들을 자세로 있음을 스스로 영예로 삼고 작화에 힘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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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현대작가초대미술전》조선일보 주최
: 1957.11.22.~12.8. 덕수궁미술관.
국전에 반대하는 재야의 화가들이 초대되어 한 전시다. 문우식은 6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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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현대미술가협회전》, 「미를 극복하는 힘」 - 이경성.


“문우식의 <제철공장>,<굴렁쇠와 까스탕크>에서는 오늘의 ‘시츄에이숀’이나 기계문명을 등지고 있는 현대인의 불안과 회의가 안개처럼 화면을 덮고 있고 그런 것들을 타협 없는 논리적 날카로움으로 공간을 결정짓고 처리하였다. 특히 <굴렁쇠와 까스탕크>는 인간 문화의 기계화라는 숙명을 등지고 동굴과 도로 앞에 정립하고 있는 인간을 나타내어 그것은 마치 고독에 떨고 있는 그들 젊은 화가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다.···이처럼 불모의 상식에서 해방된 고독한 젊은 화가들이 마음껏 제작하고 주장한 조형의 담화는 미숙과 미완성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감동을 준다. 아니 안정을 싫어하여 움직이고 대담하기 때문에 내일이 있고 내일이 있기에 영광을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젊음이란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조선일보』 195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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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창조 의욕의 집약」 - 리차드 헬쓰 서독공사. 


“···조선일보사 주최로 된 이 전시회에는 우아하거나 고상한 모습이 아니라 잔혹한 정열이 충일되어 있었고 ‘스타일’이 아니라 자유와 해방이 있었고 전통이 아니라 무인지경無人之境의 강렬한 진실성에 사로잡힌 열광이 약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전격적인 방문을 통해서 단지 겉만 핥았을 뿐이므로 우연히 나의 주의를 끈 작품의 작가 다섯 분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충격적인 이 미술전 광고 포스터를 ‘데자인’한 문우식씨는 ‘인스피레이슌’의 분류 속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든지 그가 손을 대는 것은 모두 경쾌한 리듬과 풍만豊滿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소녀 있는 공방)>의 소녀는 놀라우리만큼 살아있다. 그에게는 이 세상이 마치 그의 작품 소재를 키우고 있는 목장과 같아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의 화필은 마음대로 수확물을 거둬들일 수가 있는듯싶다. 또 문씨의 <무명교無名橋를 위한 구도構圖>는 실로 우리들의 ‘테크놀로지’ 시대를 반은 찬미하고 반은 풍자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는 현대미술이 그 존재를 전연 무시해 버리기가 일 수인 원근화법이 괄목할 만큼 활용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스케일 위에 무감각한 구조물들이 임립林立한 것처럼 보이며 보는 사람의 눈을 훈색暈色의 무無의 경지로 인도한다. 흡사 새로운 ‘바빌론’의 탑과도 같다. 작품 <가족>은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그림이다. 세인世人은 보통 고아의 전형적인 「형型」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나 이 작품 속에 흐르는 인정은 보편적인 취급 가운데서도 감동을 자아내는 그런 것이다.”
『조선일보』195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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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설명>

문우식은 천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 남관미술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홍익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해 이종우, 김환기의 지도를 받았다. 서울 환도 후 1954년 제1회《미술학부전람회》에서 학부장상 수상을 시작으로 미협전과 국전에 입상한다. 졸업 후 마음이 통하는 화우들과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준비 중, 1956년《4인전》으로 첫 데뷔 전을 치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1957년 5월 제1회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에 미국공보원에서 협회 대표로 10점의 작품을 발표했고, 아세아재단에서 후원하는 서양화 작가로 선정되었다. 《자유초대미술전》, 조선일보 주최《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6회까지 참여했고, 1958년 우리나라 최초 해외전인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한국현대미술전》에 <Still Mill No.1>을 전시했다.
 
1962년 창립한 신상회의 창립멤버로 로고와 리플렛, 현수막,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추상작품을 전시했으며 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해외전과 여러 단체에서 회화 전시를 이어나가면서 명동 국립극장 벽화 작업, 전국체육대회 카드섹션 디자인, 영빈관 실내장식 등으로 창작의 외연을 넓혔다.

홍익대학 공예학부 교수로 60년대 초부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945년 이완석과 한홍택 등이 창립한 대한산업미술가협회 회원이 되어 1964년부터 그래픽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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